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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간

psyche 2011. 8. 12. 19:39 |
   8월 10일, 미디액트 [영화는 영화다] 수업 종강. 원래 3일이 종강이었는데, 7월 말 폭우로 수업이 한 주씩 밀려 10일이 마지막 수업이 되었다. 원래 10일은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 공연을 보려고 예매를 해 놓았었는데, 김곡 감독의 수업, 유종의 미(?)를 위해 다니엘 바렌보임 선생님은 포기. 그래서 이번 베토벤 교향곡 연주회는 마지막날 공연만 보게 되었다. 

  종강 뒷풀이에서는, 또 많은 영화의 제목들이 서로 오고갔는데, 예의 반골정신이 발동하여 내게 영화 추천을 부탁하는 몇몇 동생분들께 "그런데 책을 많이 읽는 것이 더 중요해요."하고 대화를 매죠오우지하고서는. 

   회사를 안 다니니 좋은 점은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훨씬 늘었다는 것. 지금 랩탑 옆에 두 권의 책이 있다.  [레우코와의 대화],  [최초의 인간]. 체사레 파베세의 희곡소설 [레우코와의 대화]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과 영웅들의 대화 묶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스트라웁-위예의 <그들의 이런 만남들>, 그리고 다니엘 위예가 세상을 떠난 후 장 마리 스트라웁이 홀로 만든 첫 번째 작품 <아르테미스의 무릎>이 모두 [레우코와의 대화]의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2009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이 두 편의 영화를 보았는데, 이미지는 매우 정적이나 그 어떤 작품보다도 가슴을 요란하게 뛰게 만들었던 영화다. 원작인 [레우코와의 대화]도 그 묵묵한 박력이 놀랍다. 파베세는 특유의 염세주의로 신화를 다시 쓰는데, 겪은 자로서 '부질없음'을 이야기하는 영웅들의 나즈막함이 깊이 숨겨진 세상의 비밀을 털어놓는 것 같아 두렵고 감동적이다.   
 
  "
박케 : 당신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군요, 오르페우스. 그런데 당신의 생각은 오로지 죽음뿐이에요. 한 때 축제가 우리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어 주었지요. 오르페우스 : 그러면 당신들은 축제를 즐기세요. 아직 모르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허용되지요. 각자 한 번은 자신의 지옥으로 내려갈 필요가 있어요. 내 운명의 환희는 하데스에서 끝났어요. 내 방식대로 삶과 죽음을 노래하면서 끝났지요. 박케 : 그런데 운명이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이에요?"   
 

  그리고 [최초의 인간]. 
  "알베르 카뮈는... 아버지가 1차 세계 대전에 참가, 마른 전투에서 전사한 후 그는 빈곤 속에서 귀머거리인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손에 자랐다." 카뮈가 문맹인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여태 모르고 있었다니(혹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즉, 주인공이 자기가 태어난 지 얼마 안되어 전쟁터에서 전사한 아버지의 역사를 찾아나서는 내용의 [최초의 인간]은 카뮈 본인의 이야기. 이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카뮈는 교통사고로 사망. 미완의 유작.  [최초의 인간]은 아직 절반도 읽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이 지금 굉장히 절절하게 읽히는 것이 최근에 내가 천착하고 있는 주제 중 하나가 '타인의 역사'이기 때문. 타인이면서 또 다른 나, 스스로의 거울이 될 수 있는 '피붙이'의 드러나지 않은 역사. 이 소소한 욕망의 기원은 <몰랐던 것들>(2005, 김재식 감독)이라는 단편영화. 영화에서는 아버지의 제삿날 즈음에 아버지가 남극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발견되는 데, 그 남극 어딘가에 서 있는 '아버지'의 이미지가 심어놓은 알 수 없는 울림이 여전히 마음 한 켠에 남아있어서.     
  알베르 카뮈 전집이 나와있네. 다 읽어봐야겠다.


   "...일생 동안 일만 하고 지내다가 명령에 따라 사람을 죽였고 피할 수 없는 것이면 무엇이나 달게 받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손상되기를 거부했던 강인하고 씁쓸한 표정의 한 사내. 요컨대 가난한 사내... 그는 연신 뛰어가다가 뒤돌아보며 밀짚모자를 흔들어 응답하더니 먼지와 더위로 잿빛이 된 거리로 달려나갔고 더 멀리 영화관 앞 아침 나절의 눈부신 햇빛 속으로 사라져 버린 뒤 다시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아담의 오류], ][과학혁명], [인터페이스 연대기], [감각의 단면], [군중과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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