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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18 김영갑 / 아네스 자우이 / 정치없음 - 정치

  일주일 중에 가장 생기를 얻는 순간은, 토요일 오전 어딘가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막 나온 따끈따끈한 씨네21을 읽을 때. 평소보다 두 시간 정도를 더 자고 일어나, 가볍게 아침을 먹고 편안한 복장으로 집을 나와 가판대에서 씨네21을 구입, 지하철 창에 기대어 기사를 읽는다. 오전 11시에서 정오 사이, 지하철은 한산하다. 구성이 예전같지 않다는 씨네필들의 불만에 슬쩍 동의하면서도 주간지 중에 나의 주된 관심사들을 일목요연하게 마주할 수 있는 잡지로는 씨네21만한 잡지가 없는 것이다. 소개되는 그 많은 영화들 중에 볼 수 있는 영화는 몇 개 되지 않으나, 언급된 영화들의 대사 한마다, 스틸 사진 한 장이 주 5일간의 일상에 찌들어버린 몸 속의 감각세포를 자극한다. 영화 기사뿐만 아니라 책, 공연, 전시에 관한 짧은 소식들 하나하나가 빠짐없이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촉진하는...

  하고 싶은 것이... 참 많다. 영상을 만들고 싶고, 글도 쓰고 싶다. 일이 바쁜 요새, 부쩍 더 "만들고(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늘었다.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이 끊이지 않고 떠오른다. 생산해내야 할텐데 지금은 시간이 없다. 자신감은 늘 넘쳐, '수많은 당신'의 작품보다 더 재밌고, 다양한 의미 생산 가능한 무언가를 만들 수 있지. 하지만 지금은 축적해야 할 시간. 솔직히 축적하고 있는지, 상실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으나... 아니, 이건 겸손함이고 렙업은 아주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그...저 평범한 회사원의 탈을 쓴 괴물,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나-

  토요일 오전의 한산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오늘은 신당역에서 내려 충무갤러리를 다녀오는 길이다. 고 김영갑의 사진전에 다녀왔다. 2년 전 여름, 제주도에 들렀을 때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김영갑 선생님의 사진을 보기 위해 두모악 갤러리에 들렀었지. 이번 서울 전시에서는 김영갑 선생님의 미공개 작품이 선보인다 하여 많은 기대를 품고 갤러리로 향했다. 그가 찍은 제주도의 사진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편이다. 구름이 많고 흐린 날씨가 많으며, 맑은 날에 찍은 사진도 새벽이나 노을녘에 찍은 혹은 역광 사진으로서, 제주도의 정면을 바라보며 동시에 대지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다. 김영갑의 사진 속에서는 늘 바람이 분다. 액자 속에 불안함, 연약함, 우울함, 고독, 고요함, 우수가 잔잔하게 출렁인다. 바라보고 있으면... 절벽 끝에 서서 시원한 바람을 맞는 기분이다. 슬프나... 떨어져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 


  회사에서, 누군가는 정치를 한다. 맡은 업무만 잘 해서는 조직에서 오래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나는 정치를 하지 않는다. 할 필요가 없다. 끝까지 살아남을... 오래 살아남을 생각이 없으니까. 그러다보니 자존심의 정의도 다르다. 모두가 기싸움을 하는 상황에서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다들 몸을 사리는 일에도 "무심한듯 시크하게" 걸어 들어간다. 아프지 않으니까. No idea. 

  여어...기는 광화문 투썸플레이스. 조금 뒤 길 건너편 씨네큐브에서 아네스 쟈우이 감독의 <레인>(Parlez-moi de la pluie, Let it rain)을 볼 예정이다. <타인의 취향>과 <룩 앳 미>를 기억하시는지... 삶-정치, 사랑-정치란 무엇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아네스 자우이. 아둥바둥 머리를 굴리는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지. 100% 정치적이지 않은 삶을 살 수는 없으나 조금만 더 현명해지고 가벼워지고 싶은 마음에 오늘도 난 흐느적거리다가 거리에서 문득 샤우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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